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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부인 아내 이현주,딸 크리스 레오네

날리호 2020. 7. 18. 23:39

김태원이 아내,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답니다. 2016년 4월6일 방송된 KB1S 1TV 인순이의 토크드라마 '그대가 꽃' 14회 '아들의 아버지' 편에서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30년을 함께 한 아내,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아빠의 재능을 닮은 딸 다음 이야기 예고와 함께 김태원의 아내를 비롯해 두 자녀의 가족사진이 공개됐다답니다.

 

 

예고에서 김태원은 30년을 함께한 아내 이현주 씨와 함께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 공개됐다. 또 엄마를 똑 닮은 사랑스러운 딸 크리스 레오네 양과 떡두꺼비처럼 귀여운 아들 김우현 군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도 공개됐다.

 

 

특히 김태원은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들 김우현 군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공개돼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또 김태원의 딸 크리스 레오네 양은 아빠의 재능을 닮아 음악을 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한편 크리스 레오네 양은 지난 2013년 싱글 앨범 'Into The Skies'를 발매했다

 

 

** 부활 김태원 누구 경력 이력
1980년대 록밴드가 번성하던 시절 백두산의 김도균, 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곤 했다. 당시 발라드적 음색 탓에 시나위, 백두산에게 그건 록 음악이 아니라고 질타를 많이 받았다고

 

흔히 회자되는 '서대문파' 기타리스트로, 간단히 말하자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자아도취하면서 밥도 안 먹고 16시간씩 치는 기타리스트. 부활 데뷔 전까지는 게리 무어나 지미 페이지 풍의 블루스-하드록 기타, 특히 서스테인이 많이 필요한 미드템포 애드립에 능한 것으로 유명했다.부활의 전신이 되는 The End 시절에는 타카사키 아키라에 빠져서 완벽한 헤비메탈을 하고 싶어했답니다.

 

3남 2녀 중 셋째로 위로 형 둘에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다. 김태원이 국민학교 입학할 무렵 가세가 기울면서 정든 동네에서 이사를 나가게 되는 등 어렸을 때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으나 가족들에게는 막내 아들이기에 애정을 많이 받았고 갖고 싶은 것도 가지면서 자랐다고 한다. 국민학교 4학년 때는 축구를 좋아했다고 한답니다.

 

 

충암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쫓겨나듯 숭실고등학교로 전학한 후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기타에 전념하였다. 여학생에게 기타를 쳐주고 싶어 2년 걸릴 기타를 1년 만에 쳐냈다고 한다. 기타로 학교를 평정하고 강남에는 신대철, 강북에는 김태원이라는 평을 들었답니다.

 

데뷔 후에 김도균, 신대철이 리치 블랙모어나 타카사키 아키라 등의 영향을 적잖이 받으면서 헤비하면서도 속주 중심의 테크니션으로 변하는 가운데 단순하고 서정적인 곡조, 혹은 전주나 간주에서의 사운드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이는 김태원이 그 둘에 비해서 팝음악 작곡가로 월등히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면모는 부활 초기의 대표곡인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답니다.

 

부활의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한다. 다만 1집의 '희야' 같은 경우는 김태원이 쓴 게 아니라 김태원의 친구인 작곡가 양홍섭의 작사, 작곡, 2집의 '회상3'는 '마지막 콘서트'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승철이 리메이크하면서 바꾼 이름이며,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위해 썼답니다.

 

가사에서 나오는 소녀가 바로 아내. 여담이지만 가사에서 소녀가 울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당시 김태원이 약에 취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 '회상3'는 부활2집을 녹음하던 도중 녹음실에서 이승철이 보는 앞에서 한 번에 쓰여졌다고 한답니다.

 

 

신정환과 탁재훈이 진행하던 KBS의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신정환이 '마지막콘서트'의 소녀를 안다고 말하여 이승철을 당황하게 만든 바 있었다. 당연히 당시의 신정환은 김태원도 그의 아내 이현주도 모르는 상태였다.

 

 

부활 출신의 보컬 중 가장 성공한 이승철과는 그야말로 영화 속 애증의 관계. 둘 이 여러가지 일은 많았으나 간간히 합작해서 음악 작업을 하고, 그 때마다 명곡들이 발표되었기에 다시 한 번 이승철이 부활에 합류해 주길 바라는 팬들도 있다. 사실 이승철과의 관계가 너무 영화 같아서 그렇지, 이승철 이외의 다른 보컬들도 우여곡절도 많고 오래 가지 못했답니다.

 

특히 김태원의 완벽주의적 성향때문에 역대 부활 보컬들을 엄청 쪼았다고 본인이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 밴드에서 언급. 사실 문제아 보컬 김성민 때문에 한창 열받아 있을때 언급한것으로 전문은 김성민이 1년 내내 항상 걱정만 할뿐 뭐 하나 나아지는게 없다고 화를 내며 "오늘은 일단 참을건데요. 끝나고 보자고. 망치기만 해봐. 다 엎을꺼야. 내가 역대 부활 보컬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보여준다!!" 라고 씩씩대자 윤형빈과 이경규의 멘트와 자막으로 부활 보컬들에겐 인자한 국민 할매가 아니라 마귀 할멈이라고 언급한답니다.

 

 

** 기타 연주실력
오해가 없도록 미리 써두자면, 80년대의 기타 실력은 주로 속주와 화려한 손가락 움직임, 90년대에는 톤 메이킹이 한국에서는 가장 중요했다. 80년대 기준으로 볼 때 김태원은 속주에 관해서는 다른 둘에게 떨어질 게 없었다. 90년대 기준으로 볼 때 두 기타리스트에 비하면 단조로운 면이 있었으나 김태원 고유의 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화려한 테크닉 면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특유의 톤 메이킹에 있어서는 폄하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셋 다 이제는 흘러가는 기타리스트고, 기타 장인에 가까운 김도균/신대철에 비해 작곡가에 가깝고 동시에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김태원이 빠른 노쇠화가 왔을 뿐이랍니다.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타리스트로서의 김태원은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연주력 측면에서 볼 때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솔직히 네임드 프로 기타리스트라 보기에는 조금 민망한 면이 있다는 것이 팩트. 물론 뮤지션이란 기준으로 볼 때 부족한 연주력을 멜로디메이킹 능력이나 작곡능력으로 보완하고도 남는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김태원 연주력을 저평가하는데에 주로 반박으로 나오는 말이 속주 테크니션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는 얘긴데, 최근 각 기타리스트들이 각종 매체에 나와 애드립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면 오히려 무식하게 80년대 메탈키드 스타일로 후리는 건 김태원 쪽이다.

 

 

김태원은 그냥 손에 익은 스케일을 대충 마구 후리면서 디스토션을 잔뜩 걸어 뭉개는, 그야말로 80년대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수준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 이전에는 새로운 연주 주법, 리듬, 스케일 등 기타연주에 많은 시도와 발전이 있었지만 기타연주가 어느정도 정립된 현시대에는 기본기가 많이 부족한 기타리스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김태원은 80년대에서 더 이상 기타 연주에 대한 테크닉 등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온 것이며, 기타리스트보다는 뮤지션으로서의 평가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