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완 장현리 딸 자녀 서울의봄 수경사령관 장군 소장 부인 아내 나이 결혼 프로필
카테고리 없음2023. 11. 30. 14:34
출생 생일
1931년 9월 13일
고향 출신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신동
사망
2010년 7월 26일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호
산남(山南)
재임기간
제7대 수도경비사령관
1979년 11월 19일 ~ 1979년 12월 12일
형제자매
3남 3녀중 둘째
배우자
이병호
자녀
아들 장성호, 딸 장현리
학력
대구상업고등학교 (졸업 / 24회)
조선대학교 (법학 / 학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다미아노)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6
약력
한국증권전산 회장
재향군인회장 (제27-28대)
르메이에르 회장
제16대 국회의원 (전국구 3번 / 새천년민주당)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50년 ~ 1980년
임관
육군종합학교 (11기)
최종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수도경비사령관
주요 보직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차장
제26보병사단장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
제5군단 참모장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처 차장
참전 전쟁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상훈
충무무공훈장
장군의 가족들, 끝나지 않은 비극
- 2012.01.17
남편 사망뒤 우울증 앓아…외아들은 82년 의문사
아파트 뒤편 공터에서 흰 천에 덮인 주검의 신원을 확인한 딸 장현리(50)씨는 “엄마, 안 돼!”라고 울부짖으며 숨진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곁에 있던 경찰이 말렸지만, 장씨는 한사코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사위 박용찬(51·㈜인터젠 대표)씨는 “(장모님의) 건강이 안 좋으셨어요”라고 말한 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주저앉았습니다.
1979년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에 맞서 진압작전을 폈다가 나중에 고초를 겪고 강제예편당한 고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의 부인 이병호(78)씨가 17일 오전 9시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 ㅇ아파트 10층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뒀다. 정방원 수서경찰서 형사과장은 “유서가 발견됐고, 현장 상황과 주검의 상태 등으로 봐 타살 혐의점이 없어 자*로 결론 냈다”고 말했다.
경찰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씨는 이날 아침 8시30분께 아침을 먹은 뒤 가사도우미(67)가 병원에 가느라 집을 비운 사이 신발을 신고 외투를 입은 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안방에는 “미안하다. 고마웠다. 오래 살아라”라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 이씨의 시신은 오전 9시15분께 아파트 뒤편 공터에서 놀던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발견했습니다.
이씨는 2010년 7월 남편이 사망하자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주변과의 접촉을 끊고 가사도우미와 단둘이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래층에 사는 주민 공아무개(82)씨는 “장군님이 살아 계실 때는 두분이 문화센터에 같이 가서 한복 입고 무용도 배우고, 장구도 쳤는데 장군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끊으셨다”며 “그 뒤로 ‘나 혼자 살면 뭐하나’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이씨는 장군님이 돌아가신 뒤 우울증이 심해져서 지난해 7월에도 집에서 뛰어내리려는 걸 도우미 아주머니가 말린 적이 있다”며 “경비원들에게 ‘사람이 찾아와도 올려보내지 말라’고 했을 정도”라고 전했답니다.
이씨의 자*은 군사반란에 맞섰던 장 전 사령관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거듭 떠올리게 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신군부 세력이 반란에 성공하자 장 전 사령관은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 뒤 1980년 강제로 예편당했다. 두해 뒤에는 외아들을 잃었다. 당시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입학해 1학년에 재학중이던 아들은 행방불명된 뒤 한달 만에 경북 칠곡의 인동 장씨 재실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50년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5군단 작전참모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장 전 사령관은 수경사 참모장, 육군본부 교육참모차장 등을 거쳐 1979년 11월 수도경비사령관이 됐다. 그러나 한달 뒤 일어난 12·12 군사반란 당시 그는 신군부 편에 서기를 거부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을 “수도경비사령관의 책무를 완수하지 못한 죄인”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12·12 군사반란이 재조명되면서 ‘참군인’으로 칭송받았다. 1994년 자유경선으로 당선된 첫 재향군인회장이 됐으며, 2000년 제16대 총선에선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보훈특보를 맡기도 했답니다.
"子죽고, 극*적선택"..'서울의 봄' 끌려간 정우성·이성민 어떻게 됐나
- 2023. 11. 29.
개봉 초반부터 남다른 흥행력으로 6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한 '서울의 봄'. 대한민국 역사를 바꿔놓은 실제 이야기와 실존 인물들을 참고해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까지만 다루고 있다. 반란군에 맞섰던 진압군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답니다.
전두광(황정민 분)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은 군사반란에 성공하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이들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선 분)을 비롯한 진압군들의 인생은 다소 비극적이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캐릭터 모티브)
연행된 장태완 장군은 6개월간 가택연금에 들어갔고, 아들 소식을 듣고 충격받은 그의 아버지는 이듬해 4월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다.
무엇보다 장태완 장군은 아내와 1남 1녀를 두고 있었는데, 영화에서 잠깐 언급된 것처럼 공부를 아주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합격해 수석을 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1982년 행방불명된 아들의 사체가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아들은 극*적인 선택으로 종결됐고, 장태완 장군은 외아들을 가슴에 묻어야했습니다.
한국증권주식회사 사장, 국회의원 등을 지내다 2010년 별세했는데, 안타깝게도 2년 후 아내마저도 극*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성민 캐릭터 모티브)
정승화 장군을 포함해 장태완, 정병주까지 모두 강제 예편(전역)을 당했고, 특히 정승화는 군대 내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4스타에서 무려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굴욕을 겪었다. 육군참모총장이 18계급을 강등당해서 불명예 제대한 것.
또한 서빙고 조사실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212 군사반란 직후에는 해당 사실이 공개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1993년 9월, 무려 14년이 지난 뒤 국방위원회 국정조사에 참석한 정승화 총장이 "밤새 조사를 받았고, '지금도 뭐 대장인 줄 알아? 참모총장인 줄 알아?' 그러더니 내옷을 다 벗겼다. 붙들어 맨 채로 고개를 붙잡고 돌려서 수건을 뒤집어 씌우더니 수건에다 계속 물을 들이부으니까 숨이 딱 막히더라. 계속 물을 먹었다. 그걸 30분 하면 누구나 다 질식한다"며 끔찍했던 그날을 고백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정만식 캐릭터 모티브)
영화에서 왼쪽 팔에 총상을 입고 끌려나갔는데, 실제로 평생 왼팔에 큰 부상을 지니고 살았다. 1987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길 기대했으나, 전두환에 이어 또 다시 노태우가 당선되며 여전히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유지하자 실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1212 군사반란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인물이랍니다.
노태우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이후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가 실종됐으며, 139일 만에 경기도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극*적 선택으로 추정해 수사를 마무리했고,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답니다.
-김오랑 소령(정해인 캐릭터 모티브)
정병주 장군의 비서실장으로 반란군에 대항해 정 장군을 지키려다 숨졌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아내 백영옥 씨는 시력약화증을 앓고 있었는데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되는 등 완전히 실명했다고. 이후 군인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복지시설에서 봉사를 하면서 살았으나, 자신이 살던 건물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실수로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오랑은 1212 군사반란 현장에서 소령으로 사망했지만, 아내 백영옥 씨의 노력 덕분에 1990년 중령으로 특진 추서됐다. 2014년에는 특전사령부에서 보국훈장이 추서됐고, 지난해 11월 국방부 중앙전공상심의위원회는 김오랑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하기도 했답니다.
진도준 엄마 아빠 어머니 아버지 진윤기 이해인 아역 형 나이 진양철 이필옥
카테고리 없음2022. 12. 9. 03:58
- 진도준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 나이
1977년 7월 4일
연령
11세 (1987년) → 20세 (1996년) → 22세 (1998년)
학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96학번)
직업
대학생 겸 기업인
소속은?
미라클 인베스트먼트 (대주주 겸 COO / 1998년)
현재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233-1
조부모
할아버지 진양철
할머니 이필옥
부모
아버지 진윤기
어머니 이해인
형제자매 가족관계
형 진형준
- 제1회
시간적 배경: 1987년 10월 5일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튀르키예의 해변 절벽에서 총을 맞고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진 직후, 윤현우는 눈을 뜬다.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고 주변 풍경은 이상해 보였다. 조수석에서 뒤돌아보는 어떤 여인은 바로 '4-α', 진윤기 고문의 배우자인 전직 배우 '이해인'이었다. 그녀는 현우에게 "도준이 깼니?"라며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넨다. 운전석에서 운전 중이던 일명 '4-0'인 진윤기 고문은 룸미러를 통해서 현우를 보며 "다 왔다. 그만 일어나야지."라며 말을 한덥나다.
'4-1' 진형준은 자기에게 "야, 뭐해."라며 퉁명스럽게 말을 하자, 현우는 그제서야 "그럼 니가 4-1"이라며 말을 했고 그 말에 형준은 화를 낸다. 그러다가 차량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완전히 어린아이 같아 보여서 충격을 받아 이상한 소리를 주구창장 내뱉았다. 광화문 앞에서 유턴한 직후 자동차 뒷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건물은 1995년에 이미 해체됐던 조선총독부 청사, 즉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충격을 받은 현우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정차한 차량에서 내려 구역질을 했다. 뒤따라 내린 이해인은 구역질을 하는 현우의 등을 어루만지며 괜찮은지 확인한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던 윤현우. 온 세상이 컬러로 바뀌고, 눈에 보이는 세종로 거리는 1980년대의 모습이었다. 자신들을 반기는 어느 할머니(진양철의 아내인 '이필옥')와 주변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모두 순양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현우가 죽기 전에 목격했던 모습에 비해서는 상당히 젊어 보였다. 그 직후 도착한 차량에서 내린 사람은 순양그룹의 창업주 '진양철 회장'. 현우는 가족들의 인사를 받은 직후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하는 진 회장의 길을 가로막고 입을 벌린 채 죽은 진 회장이 살아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현우 눈 앞에는 죽은 진 회장의 흉상과 살아있는 진 회장의 모습이 겹쳐보인답니다.
- 제2회
시간적 배경: 1987년 10월 5일 ~ 1988년 2월 25일 (마지막 장면: 1996년 3월 4일)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3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서 1987년의 진도준으로 환생한 윤현우. 현우는 자신이 순양가의 막내 손자이고, 자신이 윤현우였던 시절 이미 죽은 걸로 알고 있었던 순양그룹의 창업주 진양철 회장이 자기 친할아버지로서 눈앞에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에 크게 놀라며 진 회장을 가로막고 그의 정장 옷깃을 만진다. 진 회장은 손자의 그런 태도에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5] 세종문화회관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건물 위에 붙은 플래카드에는 '제24회 무역의날 기념 사업훈장 시상식 / 일시: 1987.10.5. / 장소: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현우는 '지금이 87년, 내가 진양철 회장 일가의 막내?'라고 속으로 읊조리면서 "말도 안 돼."라는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 이후 진 회장의 회갑연을 위해 그의 자택인 '정심재(正心齋)'에 방문한, 도준이 되어버린 현우. 가족들이 진 회장을 비롯한 다른 순양가로부터 멸시를 받는 와중에, 도준은 순양가의 장손인 진성준이 진 회장의 귀중품인 시계를 훔치다가 백자 항아리를 깨뜨리는 걸 목격하는데, 성준은 되려 도준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도준은 침착하게 성준이 진 회장의 시계를 훔쳤고 그 과정에서 백자를 깨뜨렸다는 걸 밝혀내지만, 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진 회장은 도준에게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성준을 혼내는 대신 오히려 성준이 순양가의 후계자로서 앞가림을 못했다고 지적한다. 도준은 자신이 윤현우였던 시절 진양철 자서전에 나왔던 일화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자, 자신이 순양가의 손자로서 과거로 환생했다는 점을 각인한답니다.
정심재를 뛰쳐나간 도준. 자신의 진짜 어머니, 즉 윤현우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국밥집으로 찾아가서, 이미 죽었던 어머니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걸 알고 흐느꼈고 그녀가 끓인 국밥을 받으며 눈물을 보인다. 거기서 자신의 아버지와 동생도 발견하고 자신을 닮은 어린 윤현우도 발견했다.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 이해인이 도준을 위로했고, 그 사건을 계기로 도준은 각성한다.
도준은 다음날 진 회장에게 사과하기 위해 정심재로 찾아왔다. 정심재에서는 '순양그룹은 어떤 대통령 후보를 밀어줘야 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꼽은 도준. 어른들은 모두 그의 발언에 비웃지만, 곧 유력 대권주자였던 양김의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면서 진 회장은 도준을 드디어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곧 '새우가 어부지리로 고래를 이길 방도는 없겠나'라는 퀴즈를 낸 진 회장. 도준은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진 회장은 도준을 두고 '평범한 아이'라며 평가 절하한다.
이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답을 찾은 도준은 진 회장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이미 중동으로 출장 간 상황. 1987년 10월 29일에 귀국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할머니 이필옥으로부터 전해들은 돌아오는 항공편은 하필 'CAL 828'.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항공편은 곧 북한 요원에 의해 폭파될 항공기였다.[7] 진 회장을 구하기 위해서 비 맞으며 고군분투한 도준은 결국 정심재로 찾아가서 진 회장 비서와 연락이 닿았고, 항공편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버마에서 실종된 항공기 소식에 순양가는 모두 충격을 받고 애타게 진 회장 소식을 들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정심재에 불쑥 들어온 진 회장. 같이 따라온 이항재 비서실장은 일정에 변경이 생겨서 항공편을 바꿀 수 있었다고 전하고 도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건넨다.
- 제3회
시간적 배경: 1996년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국 뉴욕주 뉴욕시
과거 진도준이 할아버지 진양철 회장의 보답으로 점찍었던 그 허허벌판은 신도시로 탈바꿈했고, 도준은 토지 보상금과 매각금 등 명목으로 총 240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손에 쥔다. 진 회장은 "눈이 좋은 기가, 운이 좋은 기가."라며 도준의 돈복에 감탄한다.
1996년 1월. 친형 진형준과 거리를 노닐던 도준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소식이 전해지던 길거리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는 여성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데... 그녀는 자신이 윤현우였던 시절 회사에 영장을 들고 나타났던 냉랭한 모습의 검사 '서민영'이었다.
이후 도준은 아버지 진윤기와 형준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영화제를 찾아 간다. 수년 전 자신의 설득에 영화 <나 홀로 집에>를 수입해서 큰 수익을 얻은 아버지에게 이번엔 영화 <타이타닉>을 수입해야 한다고 거듭 설득하는데, 그곳에서 자신처럼 <타이타닉>에 기대를 거는 눈썰미 좋은 어떤 아저씨를 만난다. 그 아저씨는 아까 자신과 부딪혀서 길거리에 도넛을 떨구고 '천만 불짜리'라고 열변을 토하던 오세현. 오세현이 마음에 든 도준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 그를 만나기 위해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피자를 먹으며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의 인공지능 '딥 블루'와의 경기를 TV를 통해 보고 있던 오세현을 찾아간다. 그에게 인공지능이 이길 거라는 비기를 전하고 난 뒤, 그와는 사업 파트너 관계가 된다.
1996년 3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 입학한 도준, 그는 이번엔 서민영을 캠퍼스에서 같은 학교 같은 학과 동기로서 재회한다. 그녀에게는 서태지 복귀시기를 밑밥으로 던지고, 그걸 계기로 그녀와 함께 명문회 모임에 참석한다. "특권을 누려본 적도, 기대해본 적도 없다."라는 민영에게 '너가 그동안 누린 게 특권'이라는 묵직한 한 방을 날리기도 한다.
- 제4회
시간적 배경: 1996년 ~ 1997년 (회상 장면: 2000년)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등 (회상 장면: 순양자동차 공장)
도준은 자신이 가진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오세현과 함께 본격적으로 순양그룹의 승계 구도를 흔들기 위한 밑밥을 던지기 시작한다. 오세현의 파워셰어즈를 통해서 한도제철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순양과 대영과 함께 3파전을 만든다.
재계 1위 대영그룹 주영일 회장과 함께 레이싱 경기를 관전하다가 순양의 레이싱팀 차량이 리타이어하면서 체면이 팍 구겨진 진양철 회장은 신차 '아테나(Athene)] 발표회를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다. 도준은 자신이 윤현우였던 시절에 이미 읽었던 진 회장의 자서전을 되짚으며 그가 자주 갔던 개인 차고를 찾아가서 낙담한 진 회장의 마음을 달래면서 동시에 '엔진'이라는 힌트까지 주며 그를 데리고 온다.
이후 도준은 진 회장 측 도청을 계기로 오세현과의 관계를 들키게 되는데, 오히려 그걸 역이용하여 오세현을 통해서 진 회장과 그의 아들들 사이를 이간질해버렸고, 막판에 순양이 당초 생각한 적정 매수금액인 3000억 원보다 두 배를 초과한 7500억 원을 지르며 한도제철을 인수해버리게끔 만든다.
- 제5회
시간적 배경: 1997년 ~ 1998년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등
도준은 파워셰어즈로부터 독립한 오세현과 함께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첫 프로젝트로 업계 2위인 아진자동차 인수를 목표로 삼는다. 오세현에게는 적당히 둘러댔지만, 도준이 아진자동차를 목표로 삼은 건 사실 '윤현우의 아버지가 외환 위기로 인해 아진자동차에서 실직 당했고 그때의 일로 충격 받은 어머니가 사망에 이르렀던 비극'을 막기 위함이었다. 아진자동차에 눈독 들인 건 도준만이 아니었는데, 진 회장 역시도 순양자동차를 업계 꼴찌를 벗어나 구조조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아진자동차 인수에 사력을 다한다. 그런 이유로 인해 도준과 진 회장은 한도제철 때와 마찬가지로 수면 아래에서 치열하게 치고 받고 있었답니다.
전생의 어머니를 만나 밥을 먹는 장면에서의 회상으로 본체 윤현우가 왜 고졸로 남아야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간접적으로 밝혀졌다. 윤현우 본인은 서울대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고교 성적이 우수했지만, 등록금을 걱정하는 부모님을 걱정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 일선으로 바로 뛰어든 듯 하다.
순양가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순양그룹 사옥에 왔던 도준. 어머니 이해인이 금모으기 행사 도중 할머니 이필옥을 비롯한 순양가 사람들과 잘 어울린 채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꽤나 멋진 말을 하는 걸 멀찌감치 지켜보던 도준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뜬다.
순양가 장손 진성준이 귀국하게 되면서 진 회장은 현성일보 사주의 딸 모현민과 엮으려고 하는데, 모현민은 성준보다 도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1998년 3월 9일, 모현민은 대학 캠퍼스에서 도준을 기다리고 있다가 현성일보의 그날 조간 신문을 건네주며 "순양그룹에 현성일보가 필요한 것처럼, 당신한테는 내가 필요한 것 같아서요."라고 말을 하는데, 그날 1면 헤드라인은 '美 헤지펀드, 미라클 인베스트먼트. 아진자동차 인수 임박! 국부유출 심히 우려돼'였다.[24] 한편 서민영은 도준이 덕분에 의젓해졌고 한편으로 도준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도준과 자꾸만 엇갈리는 바람에 당황해한다. 도준에게 이미 마음이 들킨 거 같아서 낯 부끄러워 하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아진자동차를 둘러싼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순양그룹은 정부의 일방적인 줄세우기에 오랜 세월 공들여 키웠던 순양자동차를 내놓아야 하는 위기에 봉착하는데... 한동안 극심한 의견 대립 상태에 놓였던 도준과 오세현은 다시 뭉쳐서 진 회장을 설득하기로 한다. 오세현의 탄탄한 자금줄에 진 회장은 결국 설득당했고, 청와대에 쫓아가서 대통령과 담판을 지어 결국 아진자동차를 인수할 수 있게 된다. 1998년 3월 16일, '순양자동차·아진자동차 인수 협약식'에서 진 회장은 완전 고용승계를 선언한다.
- 제6회
시간적 배경: 1998년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등
도준은 전생의 어머니인 윤현우의 어머니에 대한 조문을 마친 후 국밥집으로 가서 가계부로부터 어머니가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해 빚까지 져 자살했단 것을 알게 되고, 그 기업이 하필 청산으로 끝난 순양생활과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도준은 생전 자신의 중학교 체육복을 입을 정도로 검소하게 사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죽음의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들린 학교 도서관에서 서민영과 마주치는데 말없이 지나가려고 하지만 자신을 바람맞히고 연락 한 번 없던 진도준에게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간 민영에게 마침 비가 오고 우산도 없는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너를 우습게 여긴 게 아니라며 내가 자격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말해준다, 이후 미라클이 파헤친 순양생활과학의 매각 과정은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전형적인 순양그룹의 비자금 조성법이었다.
- 제7회
시간적 배경: 1998년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등
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진도준은 진양철에게 "순양을 살 생각이다. 제 돈으로"라며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다. 진양철은 "나에게 반기를 든 사람은 형제고 자식이고 봐준 적이 없다"라며 "손주라고 봐주지 않는다. 법관 공부나 시작해라"라고 했다. 이어 "오늘부로 네 장기말은 압수다. 오세현이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진도준은 오 대표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새서울타운 10만평 주거단지 사업권을 순양건설에 양도하겠다고 했다. 진양철은 뇌물 스캔들에 엮인 사위 최창제를 서울시장에서 낙마시키고 오세현만 감옥에 집어넣으면 새서울타운 사업권이 그대로 순양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진도준은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서울타운 미공개 내부 자료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 세력이 있다는 것을 고모부 최창제가 긴급 기자회견으로 밝힌 것. 그 부동산 투기 세력에는 장남 진영기의 처가 식구들이 껴 있었다.
진도준은 해당 사실이 밝혀지면 안그래도 IMF로 민심이 뒤숭숭한 마당에 부동산 투기세력으로 낙인찍힌 순양은 다시는 정부가 주도하는 건설 사업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양철을 압박했다. 결국 진양철은 오세현을 풀어줬다.
-제8회
시간적 배경: 1998년 ~ 1999년
공간적 배경: 서울특별시 등
DMC 사업권을 지키기 위해 사촌형 진성준의 결혼식 날까지도 입주할 업체를 찾으러 영업을 뛴다. 그 일환으로 의료원 이사장이 된 아버지 덕에 대영 주 회장이 VIP환자로 입원한 것을 알고는 병실로 가서 그를 만난다. 외부인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며 경호팀을 책망하려는 주회장에게,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면 대영병원이 아난 순양의료원에서 인공판막 수술을 받는 것을 홍보자료로 쓰겠다며 거래를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비밀로 하기로 한 걸 지키지 않은 진회장에게 전화로 항의하려는걸 제지하면서 대영물류가 순양을 제치고 업계 1위를 탈환할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방법은 바로 홈쇼핑 인수. 형 진형준이 홈쇼핑을 즐겨보던 것에서 영감을 받아 홈쇼핑으로 소비심리를 자극받은 사람들이 구매한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물류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이걸 대영물류가 가져오면 된다는 것. 그래서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주 회장도 신사업에도 진출하고 점유율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인수할 홈쇼핑 회사의 DMC 입주를 약속한다.
이렇게 순양의 입김이 닿지 않는 업체들로 DMC를 채운 그는 뒤늦게나마 진성준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기념사진을 찍는데 옆에 선 진양철이 힘들어도 웃으라고 하자 순양을 단순히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방식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면서 할아버지가 웃으시라며 맞받아친다. 진양철이 고개를 돌리면서 진도준을 쳐다보는 바람에 결혼사진을 망친 건 덤이다
뒤이어 열린 피로연에서 진 회장이 장자승계 원칙을 버리겠다며 돈으로 사든 경영능력을 보여주든 하라는데 이때 서로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본다. 할아버지가 나가자 물류창고로 유배된 진성준에게 멱살을 잡히지만 모현민이 기절을 하는 바람에 유야무야된다.(진도준 엄마 아빠 어머니 아버지 진윤기 이해인 아역 형 나이 진양철 이필옥)
히샬리송 고아원 고아 나이,히샤를리송 프로필 일정 연봉 주급 포지션 등번호
카테고리 없음2022. 12. 2. 14:48
개인 정보
전체 이름 Richarlison de Andrade
나이 출생일 1997년 5월 10일(25세)
고향 출생지 브라질 노바베네시아
키 184cm
포지션 윙어
클럽 정보
현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
등번호 9번
청소년 클럽 기록
2013-2014
2014-2015
헤알 노로에스치
아메리카 미네이루
히샤를리송(Richarlis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브라질의 축구 선수로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에서 윙어로 활약하고 있다.
클럽
2015년 아메리카 FC에서 데뷔하여 24경기 9골을 뽑아내며 팀의 브라질 2부 리그 4위 및 차기 시즌 1부 리그 승격에 일조했답니다.
이후 2016년 플루미넨시 FC로 이적하여 2017년까지 67경기 19골을 터뜨리며 팀의 2017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준우승, 2연속 코파 수다메리카나 진출에 기여한 데에 힘입어 한화 약 178억원의 이적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왓퍼드 FC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적 후 2017-18 시즌 41경기 9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25일 한화 약 744억원에 같은 프리미어리그팀이자 리버풀 FC의 지역 라이벌팀인 에버턴 FC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에버턴 올해의 선수상에도 선정되는 등 현재까지 119경기 42골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여름 이적시장 토트넘 홋스퍼 FC에 합류하였습니다.
국가대표팀 경력
브라질 U-20 대표팀 소속으로 2017년 CONMEBOL U-20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이 대회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결선라운드 진출에 기여했고 이후 이듬해인 2018년 8월 27일 미국 NFL의 뉴욕 자이언츠와 뉴욕 제츠의 공동 홈 구장인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후반 30분경 호베르투 피르미누와 교체 투입되며 마침내 브라질 성인대표팀 소속으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9월 11일 NFL의 워싱턴 커맨더스의 홈 구장인 페덱스필드에서 열린 엘살바도르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하며 5-0 대승에 일조했다.
그 뒤 이듬해에 자국에서 열린 2019년 코파 아메리카 최종 엔트리에 합류 후 페루와의 결승전에서 2-1로 앞서 있던 후반 45분경 승부에 쐐기를 박는 PK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2년 후 또 다시 자국에서 열린 2021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하여 전 대회 결승전 상대였던 페루와의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도 쐐기골을 터뜨리며 4-0 대승과 더불어 팀의 2연속 결승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으나 팀은 결승에서 라이벌 아르헨티나에 0-1로 덜미가 잡혀 2연속 코파 아메리카 우승 사냥에 실패했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범유행으로 1년 연기된 2020년 하계 올림픽 본선을 통해 올림픽 무대 데뷔전을 치르자마자 전 대회 결승 상대이자 은메달팀이었던 독일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작성하는 등 6경기 5골이라는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2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었답니다.
수상 내역
클럽
아메리카 FC
브라질 2부 리그 : 4위 (2015)
플루미넨시 FC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 준우승 (2017)
국가대표팀
브라질
코파 아메리카 : 우승 (2019), 준우승 (2021)
브라질 브라질 U-23
하계 올림픽 : 금메달 (2020)
개인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올해의 팀 : 2017
올림픽 축구 득점왕 : 2020
브라질 조규성?...'시저스킥 원더골' 히샬리송, '팔로워 101% 폭등'
- 2022. 12. 1
환상적인 '시저스 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던 히샬리송을 향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브라질(FIFA 랭킹 1위)은 3일 오전 4시(한국시간) 카타르 루사일에 위치한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G조 3차전에서 카메룬(FIFA 랭킹 43위)와 맞붙는다. 브라질은 승점 6점(2승, 3득 0실)으로 16강에 진출했다.
월드컵 '통산 5회 우승'이자 '최다 우승'에 빛나는 삼바군단 브라질.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왕좌에 오르고자 도전장을 내밀었다. 브라질은 전 포지션에 걸쳐 수많은 월드클래스들이 탄생하면서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단했다. 브라질은 1차전 세르비아(FIFA 랭킹 21위), 2차전 스위스(FIFA 랭킹 15위)를 각각 2-0, 1-0으로 격파하면서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3차전 카메룬전까지 승리하여 G조 1위로 H조 2위를 만나겠다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 두 경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히샬리송이다. 세르비아전 당시 터뜨린 원더골 덕분이다. 후반 27분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측면을 파고든 다음 중앙으로 크로스를 전달했다. 히샬리송이 침착하게 볼을 띄운 다음 몸을 돌려 '시저스 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월드컵 데뷔전에서 멀티골이자 원더골을 터뜨린 히샬리송. 브라질은 물론 전 세계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축구 통계 매체 '트랜스퍼마크트'는 "특별한 토너먼트에서 특별한 득점을 넣으면 벌어지는 일!"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히샬리송에 대해 조명했답니다.
매체는 히샬리송 SNS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숫자로 인기 상승을 주목했다. 월드컥 개막 전까지만 하더라도 710만 명에 불과했던 팔로워가 1,430만 명까지 폭증했다. 퍼센트로 따지면 무려 101.4% 상승한 셈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차전 우루과이전 교체 투입, 2차전 가나전 멀티골 이후 조규성 팔로워가 급증한 것. 조규성 SNS는 전 세계에서 모인 축구 팬들로 댓글창이 점령되기도 했다.
토트넘 연봉 순위 공개..케인 1위, '주급 3억' 손흥민은?
- 2022. 9. 15
토트넘 훗스퍼 선수단의 연봉이 공개됐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 많은 신입생이 합류한 만큼 순위표에 변동이 컸다.
영 ‘더 선’은 15일(한국시간) 2022-2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의 급여가 공개됐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 다양한 신입생이 합류한 만큼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습니다.
팀 내 가장 많은 주급을 받는 선수는 ‘간판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이었다. 케인은 토트넘 유스 출신으로 EPL 득점왕을 3번이나 차지한 공격수다. 아직도 팀 내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케인은 주급 20만 파운드(약 3억 2,000만 원)를 받고 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1,040만 파운드(약 167억 원)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2위는 대한민국의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2021년 여름 토트넘과 4년 계약을 맺으면서 연봉이 대폭 인상됐다. 재계약 시즌인 2021-22시즌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을 수상하며 최고의 커리어를 장식했다. 이번 시즌에는 부진을 겪고 있긴 하지만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계속해서 중용하고 있다.
매체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손흥민은 주급 19만 2,000파운드(약 3억 1,000만 원)를 받고 있었다. 연봉으로 환산한다면 약 998만 파운드(약 160억 원)였다.
3위부터 6위까진 대부분 새로운 신입생이었다. 주급 17만 8,269파운드(약 2억 8700만 원)를 받는 이반 페리시치가 3위, 주급 16만 5,000파운드(약 2억 6,500만 원)를 버는 크리스티안 로메로는 4위, 주급 13만 3,779파운드(약 2억 1,500만 원)를 받는 히샬리송은 5위, 주급 12만 1,154파운드(약 1억 9,500만 원)를 받는 클레만 랑글레는 6위에 위치했답니다.
데얀 쿨루셉스키는 7위에 올랐다. 주급 11만 파운드(약 1억 7,200만 원)를 받으며 현재 임대생 신분으로 토트넘에서 뛰고 있다. ‘주장’ 위고 요리스는 주급 10만 파운드(약 1억 6,000만 원)에 그쳤다. 2012년부터 토트넘의 골문을 지켜오고 있는 요리스는 케인보다 2배나 적은 주급을 받고 있었답니다.(히샬리송 고아원 고아 나이,히샤를리송 프로필 일정 연봉 주급 포지션 등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