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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3일 방송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스페셜 가족으로 축구선수 이천수가 등장했답니다. 이날 이천수의 쌍둥이 아들, 딸 태강이와 주율이는 보행기를 탄 모습으로 첫 등장했다. 주율이가 치발기를 물며 태강이를 바라보자, 태강이는 주율이가 물고 있는 치발기를 향해 꼬물꼬물 이동했답니다.

 

 

이때 이천수가 등장해 쌍둥이 아들 딸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이천수는 능숙하게 아이들을 돌보는 듯했지만 아내가 "저게 안아달라는거야"라며 대신 안아주었답니다.

 

 

한편 이천수 집 동네 위치 어디 사는곳은 경기도 용인이라고 하며 평수는 30평대에, 가격은 8~10억원정도???로 보인답니다.

 

첫째 딸 주은이가 등장했고, 태강이와 함께 노는 아빠를 보던 주은이는 태강이가 울먹거리자 "그렇게 하면 안되지. 애기가 못 놀잖아"라며 품에 안고 돌봐줬답니다.

 

 

이천수는 "오늘 너무 일찍 일어났어. 다섯시 반에 일어났어. 너무 힘드네"라며 투덜거리자, 아내는 "잘 해봐. 주은아. 잘해 봐 '세 명'"이라며 이천수가 아닌 첫째 딸 주은이에게 당부를 건네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 이천수 누구???
이천수(李天秀, 1981년 7월 9일,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였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윙어였답니다.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답니다.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쳐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된다. 또한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계적이었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답니다.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활동량을 이용한 뛰어난 오프더볼 움직임과, 순간 속도를 이용한 돌파, 침투능력, 위협적인 중거리 슛 덕이었다. 박지성이 뛰어난 활동량과 경기 관여로 전체적인 경기력과 흐름을 주도해 나간다면, 이천수는 경기가 비벼질 때 상대를 흔들고 파고들어서 위협을 가하는 크랙이었답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 원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고 이을용, 고종수 등 톱클래스 왼발잡이 키커들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선수 중 이천수만큼 프리킥을 잘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답니다.

 

PK의 경우 2006년 A3 대회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 현대는 그 경기에선 PK 실축으로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알 샤밥전에서 이천수를 앞세워 6-0으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두번의 유럽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두번의 울산현대 시절의 이천수는 그야말로 언터처블.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답니다.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파올로 말디니 뒤통수 후려차기와 같이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나 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행위도 있었으나,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20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투혼과 눈물처럼 국내 국대 팬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답니다.

긍정과 부정 양 측면이 국내 선수에게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공히 두드러지니, 이런 류의 멘탈이 거의 천부적이란 걸 생각하면 이 선수의 선수 생활이 끝나감에 이르러서 못내 아쉬운 감은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답니다.

 

다행히 말년인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술집 폭행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갱생한 듯 사고가 크게 줄었으며, 특히 말년에 고향 팀 인천에 대한 충성심은 당시 설기현의 통수질로 분노가 극에 달한 인천 팬들에게 위안이 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실력의 수준은 좀 차이가 있겠지만 안토니오 카사노와 커리어가 묘하게 비슷하답니다.